해체주의가 스포츠웨어와 만나는 방식
메종 마르지엘라의 세컨드 라인 엠엠6(MM6 Maison Margiela)이 2026년 9월 23일 밀라노 패션위크 런웨이에서 2027년 봄여름 컬렉션을 공개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지점은 새로운 옷 한 벌이 아니라, 이미 있는 옷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가 통째로 뒤바뀐다는 점이다. 셔츠가 그대로 길어져 드레스가 되고, 스커트의 패턴이 확장돼 또 다른 드레스로 다시 태어나며, 니트 스웨터는 몸을 감싸는 대신 허리를 묶는 벨트로 쓰였다. 여기에 브라질 슬리퍼 브랜드 하바이아나스와 손잡고 발가락이 들어가는 자리가 여섯 개인 플립플랍까지 선보이면서, 옷을 넘어 신발이라는 익숙한 카테고리까지 해체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해체주의 하우스로 출발한 메종 마르지엘라의 세컨드 라인이 이번 시즌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옷 한 벌을 새로 디자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옷과 신발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컬렉션의 중심에 놓았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글렌 마르텐스(Glenn Martens) 체제에서 이 브랜드가 꾸준히 밀어온 해체주의 실험이, 이번엔 스포츠·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의 잇단 협업이라는 대중적 접점을 통해 더 넓은 소비 시장으로 걸어 나왔다는 신호로 읽힌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의 핵심은 '기능 전환'이라는 하나의 문법으로 요약된다. 원래 셔츠였던 실루엣이 그대로 길어져 드레스가 되고, 스커트의 패턴이 그대로 확장돼 또 다른 드레스로 재해석되며, 니트 스웨터는 몸통을 감싸는 옷이 아니라 허리를 묶는 벨트로 다시 쓰였다. 이는 단순히 '트랜스포머블 디자인' 같은 기믹이 아니라, MM6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원칙, 즉 옷의 정해진 용도보다 착용자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우선시하는 태도의 연장선이다. 여기에 협업 라인이 이 원칙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하바이아나스와 만든 플립플랍은 기존의 두 갈래 스트랩 구조를 벗어나 발가락이 들어가는 자리를 여섯 개로 늘리고 여섯 가지 색상의 플랫폼을 조합했다. 슬리퍼라는, 수십 년간 형태가 거의 고정돼 있던 제품군을 손댔다는 점에서 이번 협업은 단순한 로고 콜라보와는 결이 다르다. 숫자 6은 이번 시즌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내는 그래픽 요소로 남성 내복, 럭비 셔츠, 신발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에 2026~2027 시즌 동안 이어진 살로몬과의 협업까지 더하면, MM6는 하이패션 하우스가 스포츠웨어 문법을 빌려오는 정도를 넘어 아예 스포츠 브랜드의 제품 카테고리, 즉 신발과 슬리퍼와 기능성 이너웨어 안으로 들어가 그 카테고리 자체를 해체주의적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개별 아이템 하나하나의 디자인보다 '형태와 기능의 전환' 자체를 예술적 제안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이번 시즌은 브랜드 철학을 상품 전면에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꼽을 만하다.
왜 지금인가
럭셔리 하우스와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의 협업 자체는 새로운 흐름이 아니다. 하지만 MM6가 이 시점에 살로몬에 이어 하바이아나스까지 연달아 끌어들이는 것은, 하이패션이 '입는 옷'에서 '신는 것, 걸치는 것 전반'으로 해체주의를 확장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슬리퍼나 러닝화처럼 원래 기능이 명확하게 고정된 카테고리일수록, 그 형태를 비틀었을 때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해석의 자유'라는 메시지가 더 선명하게 전달된다. 옷은 계절과 유행에 따라 실루엣이 자연스럽게 바뀌지만, 슬리퍼의 스트랩 개수나 기능성 러닝화의 구조는 대체로 고정관념이 강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봄여름 컬렉션이 공개되는 밀라노 패션위크라는 시점 자체도 의미가 있다. 다음 시즌 상품 기획과 바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에, 메인 라인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접근성이 있고 협업을 통한 화제성 확보가 쉬운 세컨드 라인이 먼저 실험적 메시지를 던지고, 그 반응을 본 뒤 상위 라인이나 다른 협업으로 확장하는 패턴은 해체주의 계열 브랜드들이 반복적으로 써 온 전략이기도 하다. MM6가 이번 시즌 유독 협업의 수와 강도를 높인 것은, 해체주의라는 다소 실험적인 미학을 스포츠웨어라는 익숙한 카테고리에 태워 더 넓은 소비자층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는 포석으로 읽을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세컨드 라인 시장에서 협업을 통한 화제성은 곧 신규 소비자 유입과 직결되는데, 하바이아나스처럼 가격 접근성이 높은 브랜드와의 조합은 메인 컬렉션보다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도 함께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에 볼 것
당장 확인할 지점은 하바이아나스 협업 플립플랍과 살로몬 협업 라인의 실제 출시 시점과 가격대, 그리고 이 제품들이 메인 컬렉션 룩과 별개로 상시 판매되는 협업 캡슐로 자리 잡을지 여부다. 협업 신발류는 통상 정규 컬렉션보다 앞서 별도 드롭 형태로 풀리는 경우가 많아, MM6의 다음 공지가 2027년 봄여름 시즌 본편보다 먼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함께 지켜볼 부분은 숫자 6을 활용한 그래픽 요소가 이번 시즌 한정 모티프로 끝날지, 아니면 브랜드의 시즌을 관통하는 고정 시그니처로 자리 잡을지다. 내복이나 럭비 셔츠처럼 상대적으로 베이식한 아이템에 반복 노출된 점을 보면, 브랜드 측이 이를 단순한 로고 이상의 정체성 장치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글렌 마르텐스 체제의 MM6가 스포츠웨어 협업을 하나의 시즌 이벤트가 아니라 매 시즌 반복되는 정규 전략으로 굳힐지도 관전 포인트다. 이미 살로몬과 하바이아나스라는 서로 다른 카테고리, 즉 아웃도어 러닝화와 여름 슬리퍼를 연달아 끌어들인 만큼, 다음 협업 대상이 어떤 카테고리로 확장될지에 따라 MM6가 해체주의를 얼마나 폭넓은 소비 영역까지 밀어붙이려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셔츠와 스커트가 드레스로, 스웨터가 벨트로 바뀌는 '기능 전환' 문법 역시 다음 시즌 아우터나 가방 같은 다른 카테고리로 옮겨갈지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