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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 Now› Hands On 2026.09.29
Now Hands On·5 min read·2026.09.29

K팝이라 부르지 않는 무대, 시장이 움직인다

동아시아 팝의 경계가 다시 그려지는 순간

JIWOOTRENDFEED DESK

동아시아 팝의 경계가 다시 그려지는 순간

런던 서부 화이트시티의 도로 통제 요원이 하이비스 조끼를 입고 메이드복 차림의 관객들에게 "이쪽이 K팝이에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지난 9월 26일 열린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음악 레이블 Eastern Margins의 페스티벌 'Margins United' 2026 현장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요원조차 "저 안이 진짜 K팝이 맞느냐"고 되물을 만큼, 2,800명 규모의 화이트시티 Exhibition과 쇼디치 Village Underground 두 곳에서 낮과 밤으로 이어진 이번 무대는 케이팝이라는 단어로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라인업으로 채워졌다. 전 이달의소녀(Loona) 멤버 이브(Yves)가 헤드라이너로, J팝 5인조 F5ve가 클로징으로 서는 동안 그 사이를 만다린어 아티스트들과 하이퍼팝 프로듀서들이 채웠다는 사실은,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이 행사가 더 이상 'K팝 그리고 나머지'라는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 장면이 그냥 행인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K팝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시장에서 다시 정의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기존 K팝 아이돌 산업이 표준으로 삼아온 미학은 단정함과 순결함이었다. 칼군무와 정제된 보컬, 스캔들 없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K팝을 규정해온 코드였다면, 이번 라인업이 보여준 건 정반대 방향이다. 로나(Loona) 해체 이후 솔로로 전향한 이브는 하이퍼팝과 하우스, 팝펑크를 넘나드는 실험적 사운드로 방향을 틀었고, 이는 그가 K팝 유튜버로 활동했던 이력이 오히려 한국 대중음악 저변에 이런 실험성이 이미 자라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거론된다. 클로징 무대에 오른 J팝 5인조 F5ve는 2025년 앨범 'SEQUENCE 01'을 그래미 수상 프로듀서 블러드팝(BloodPop)과 함께 작업했고, 최근에는 독일 프로듀서 메차톡(Mechatok)과 협업하며 애니메이션 주제가풍의 앙증맞은 J팝 사운드와 드레인 갱(Drain Gang) 식 디지털 맥시멀리즘을 뒤섞었다. 여기에 자키제브라(Jackzebra)·유저116(User116)·알알라이엇(R!R!Riot)·야카(Yaka) 등 만다린어권 아티스트들이 가세해, 클라우드 랩에 가까운 과도하게 가공된 사운드로 자신들만의 영역을 새로 그었다. 케이팝, 제이팝, 중화권 음악이 각자의 산업 논리로 나뉘어 있던 이전 구도와 달리, 이번 라인업은 언어권보다 사운드의 실험성을 기준으로 무대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이전 페스티벌들과 결정적으로 달라졌다.

왜 지금인가

이 흐름이 특정 아티스트 개인의 실험을 넘어 시장의 신호로 읽히는 이유는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디지털 맥시멀리즘(digital maximalism)이라는 키워드의 검색량은 최근 12주 동안 999%라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하이퍼팝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디지코어·다리아코어 같은 세분화된 마이크로장르로 계속 갈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은 이 사운드가 반짝 유행이 아니라 팬덤 안에서 독자적인 분류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2018년 설립된 Eastern Margins가 올해로 3년 연속 대형 페스티벌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한 번의 이벤트라면 우연이지만, 세 번째 에디션까지 규모를 키우며 반복됐다는 건 런던이라는 서구 음악 시장이 동아시아발 사운드를 일회성 붐이 아니라 꾸준히 소비할 만한 카테고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K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산업 모델을 갖춘 상황에서, 그 다음 단계로 관심이 향할 곳은 K팝의 더 완성된 버전이 아니라 K팝이 미처 담지 못한 실험적이고 경계를 흐리는 사운드라는 점도 이 타이밍을 설명해준다. 즉 지금은 동아시아 팝 음악 시장 전체가 아이돌 산업이라는 단일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세분화되는 초입에 서 있는 시점이다.

다음에 볼 것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다음 이정표는 이 흐름이 런던을 넘어서는지 여부다. Eastern Margins가 3년째 같은 행사를 키워왔다는 것은 다음 에디션에서 규모나 도시가 더 확장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 실험음악 신은 런던의 니치 행사에서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카테고리로 격상될 수 있다. 이브가 이번 헤드라이너 무대 이후 다음 앨범을 어떤 사운드로 채울지, F5ve가 블러드팝·메차톡과의 협업을 싱글 단위를 넘어 앨범 전체로 확장할지도 지켜볼 지점이다. 특히 만다린어권 아티스트들이 이번처럼 대형 무대의 미드빌로 서는 데 그치지 않고 헤드라이너급으로 성장하는지는, 이 신이 K팝·J팝 스타의 곁다리 실험을 넘어 독자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을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국내 관점에서는 이런 흐름이 기획사들의 아티스트 개발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돌 산업의 안전한 정형성과, 하이퍼팝·클라우드랩처럼 해외 인디·언더그라운드 신에서 검증된 실험적 사운드 사이에서 다음 세대 아티스트들이 어느 쪽에 베팅할지가 이번 페스티벌이 던진 질문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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