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 뮬이 묻는 신발의 다음 형태
하바이아나스와 함부르크 기반 3D프린팅 신발기업 젤러펠드(Zellerfeld)가 두 번째 협업작 '탑 토 뮬(Top Toe Mule)'을 공개했다. 2025년 8월 세계 최초의 3D프린팅 플립플롭으로 소개된 '탑 토(Top Toe)'가 6가지 컬러로 호평을 받은 지 1년여 만이자, 코펜하겐 패션위크에서 키튼힐 플립플롭으로 한 차례 더 화제를 모은 직후에 나온 발표라는 점에서 이번 소식은 단순한 신제품 하나로 읽히지 않는다. 젤러펠드는 그동안 루이비통, 나이키, 예지, 몽클레르처럼 가격대와 희소성이 높은 라인과만 손잡아온 회사였고, 하바이아나스는 반대로 누구나 몇만 원대에 사는 브라질 국민 슬리퍼의 대표주자였다는 점에서, 두 브랜드가 만나는 지점 자체가 3D프린팅 신발이 하이엔드 쇼룸을 벗어나 대중 매장으로 내려오는 첫 교차로를 보여준다. 60년 넘게 고무 한 장을 잘라 끈을 끼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온 브랜드가, 접착제도 바느질도 없이 한 번에 찍어내는 제조법으로 완전히 닫힌 신발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은, 플립플롭이라는 카테고리가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리키는 신호이기도 하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탑 토 뮬이 이전 모델과 가장 다른 지점은 '닫힌 구조'다. 1세대 탑 토는 샌들의 기본 틀 안에서 소재와 제작 공정만 3D프린팅으로 바꾼 실험이었다면, 뮬은 하바이아나스의 상징인 V자형 끈과 토 포스트 라인은 그대로 두면서도 발 전체를 감싸는 슬립온 구조로 넘어갔다. 젤러펠드의 프린팅 기술은 신발 한 짝을 이어붙이는 부품의 조합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덩어리로 뽑아내기 때문에, 접착제나 바느질 같은 전통적인 신발 제작 공정이 통째로 빠진다. 쿠셔닝과 외형이 하나의 구조에서 동시에 완성되는 방식이라, 종전 플립플롭에서는 볼 수 없던 조각적인 볼륨감과 측면 커팅 디테일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더해 하바이아나스는 이번 신발과 매칭되는 스플릿토(split-toe) 양말 5종을 함께 내놨다. 색상은 뉴트럴 계열의 오트·블랙·스톤, 비비드 계열의 라일락·옐로우로 신발과 동일하게 맞춰, '샌들에 양말'이라는 그동안 금기처럼 여겨졌던 스타일링을 브랜드가 직접 제안하는 조합 상품으로 끌어올렸다. 디자인을 총괄한 이에다 파바니 하바이아나스 글로벌 디자인 디렉터는 "익숙함과 혁신 사이의 균형을 잡는 프로젝트"라며 "새로운 실루엣이 하바이아나스를 더 닫히고 다용도인 영역으로 데려가지만, 상징적인 V자형 끈은 세심하게 지켰다"고 밝혔다.
왜 지금인가
3D프린팅 신발이 등장한 지는 몇 해 됐지만, 그 무대는 대체로 루이비통·나이키·예지·몽클레르 같은 하이엔드 라인에 머물러 있었다. 2015년 설립된 젤러펠드가 이름을 알린 것도 이런 럭셔리·하이패션 협업을 통해서였다. 이번 협업이 눈에 띄는 이유는 그 기술이 처음으로 명품이 아니라 1인당 몇만 원대의 데일리 샌들 브랜드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하바이아나스는 브라질 해변 문화에서 출발해 누구나 신는 국민 슬리퍼로 자리잡은 브랜드이고, 그 대중성과 접근성이야말로 3D프린팅이 '쇼룸의 기술'에서 '매장의 상품'으로 내려오는 실질적인 시험대가 된다. 게다가 이 흐름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연속된 전략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첫 협업작 탑 토가 6가지 컬러로 먼저 시장의 반응을 확인했고, 올해는 코펜하겐 패션위크 테이크오버로 브랜드 무게감을 한 번 더 끌어올린 뒤, 곧바로 두 번째 실루엣인 뮬을 내놓는 순서를 밟았다. 신제품을 한 번에 던지기보다 컬러 수를 늘리고 실루엣을 단계적으로 확장하면서 반응을 쌓아가는 방식이다. 플립플롭은 통상 여름 성수기 상품으로 분류되지만, 뮬이라는 닫힌 형태로 영역을 넓히면 사계절 판매가 가능한 카테고리로 체급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이 시점의 선택을 설명해준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신발을 신고 벗는 전통적 샌들의 경험과 발 전체를 감싸는 뮬의 경험을 한 브랜드 안에서 고를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여름 한정 아이템으로만 소비되던 플립플롭 브랜드에 사계절 지갑 점유율을 기대할 근거를 만들어준다. 경쟁 구도로 보면, 캐주얼 샌들 시장의 다른 브랜드들이 아직 전통적 공정에 머물러 있는 사이 하바이아나스가 제조 방식 자체를 바꿔 선점에 나선 셈이기도 하다.
다음에 볼 것
탑 토 뮬은 오트·블랙·스톤·라일락·옐로우 5가지 컬러로 출시되며, 프리오더는 하바이아나스 공식 웹사이트에서 이미 시작됐다. 정식 발매일은 10월 14일로, 이날부터는 하바이아나스 매장과 젤러펠드 웹사이트 양쪽에서 동시에 구매할 수 있다. 두 개 판매 채널을 병행하는 구조는 이 제품이 하바이아나스 입장에서는 라인업 확장이고, 젤러펠드 입장에서는 3D프린팅 신발의 대중 유통 테스트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칭 양말까지 세트로 제안한 만큼, 실제 발매 이후에는 신발 자체의 완판 속도뿐 아니라 양말 세트가 별도 판매로도 반응을 얻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만하다. 두 브랜드가 1년 사이 샌들, 키튼힐, 뮬까지 실루엣을 빠르게 늘려온 만큼, 다음 단계로 부츠나 스니커즈 형태의 완전히 닫힌 신발로 넘어갈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접착제와 바느질이 없는 생산 방식은 소량 생산과 빠른 색상 전환에 유리한 구조여서, 이 협업이 계속된다면 발매 주기 자체가 기존 신발 브랜드보다 짧아질 가능성도 있다. 3D프린팅 기술이 매장 진열대까지 내려온 이번 사례가 다른 캐주얼 슈즈 브랜드들의 후속 협업으로 이어질지, 업계가 주시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