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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Hands On·5 min read·2026.10.06

신발업계가 괴짜 디자이너에 베팅하는 이유

아브라에서 캠퍼로, 신발 디자이너의 다음 행보

JIWOOTRENDFEED DESK

아브라에서 캠퍼로, 신발 디자이너의 다음 행보

스페인 신발 브랜드 아브라(Abra)를 이끄는 아브라함 오르투뇨(Abraham Ortuño)가 2026년 10월 파리 패션위크 무대에서 2027년 봄·여름(SS27) 컬렉션을 공개했다. 스스로를 '슈 로드(Shoe Lord)'라 칭하는 그는 신발 제조업 전통이 깊은 스페인 알리칸테 출신으로, 2019년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아브라를 설립한 뒤 캔디 색상의 가죽백과 과장되게 비틀린 힐 디자인으로 신발 업계에 독자적인 자리를 만들었다. 이번 쇼가 유독 눈에 밟히는 이유는 단순한 신상 발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오르투뇨는 지난 3월 스페인 레거시 신발기업 캠퍼(Camper)와 그 실험 라인 캠퍼랩(CamperLab)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고, 이번 SS27은 그 임명 이후 아브라라는 독립 레이블 이름으로 선보이는 마지막 컬렉션으로 알려졌다. 즉 이 쇼는 한 개인 디자이너의 신작 공개가 아니라, 인디 레이블이 쌓아온 창작 언어가 통째로 대형 브랜드 본체로 흡수되는 이행의 한 장면이며, 신발 업계가 어떤 인재를 어떤 방식으로 흡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SS27 컬렉션은 오르투뇨가 어린 시절 마요르카와 파리를 오가며 자연 속에서 보낸 기억, 그리고 2010년 일본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Arrietty)'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받은 영향을 뼈대로 삼았다. 컬렉션은 스케일과 비율, 현실감을 뒤틀며 익숙한 형태를 말 그대로 뒤집어 보여준다. 드레스는 해체된 뒤 서로 겹쳐 봉합됐고, 힐은 모델의 머리 위에 얹혔으며, 특정 의상은 부풀어 오르듯 확장돼 왜곡감을 만들어냈다. 버섯을 닮은 질감, 과일에서 따온 모자, 거꾸로 묶은 포니테일 같은 디테일이 이어지며 디자이너 스스로 '약간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라고 표현한 톤을 완성했다. 과거 아브라가 캔디 컬러의 가방과 비대칭 힐 같은 액세서리 중심 실험으로 주목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컬렉션은 신발·가방을 넘어 의상 전반의 구조와 실루엣까지 왜곡의 대상으로 넓힌 셈이다. 무엇보다 이 무대에서 캠퍼와의 새 신발 협업 라인이 처음 공개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오르투뇨가 캠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레이블에서 캠퍼 신발을 들고 나온 셈이어서, 두 브랜드의 경계가 한 사람의 디자인 언어 안에서 겹쳐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왜 지금인가

오르투뇨가 캠퍼의 수장으로 선택된 배경을 보면 이번 타이밍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파리의 프랑스 패션 연구소(Institut Français de la Mode)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뒤 자크무스(Jacquemus),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로에베(Loewe), 겐조(Kenzo) 같은 브랜드들과 협업하며 경력을 쌓았다. 즉 그는 전통적인 사내 승진 경로가 아니라, 동시대 인디·컨템퍼러리 신(scene)에서 이름을 얻은 뒤 발탁된 인물이다. 신발 업계에서 이런 발탁은 최근 몇 년간 패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비주류에서 독창적 실루엣과 질감으로 화제를 만든 디자이너를, 오래된 역사를 가졌지만 젊은 세대에게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는 브랜드가 수장으로 영입해 체질을 바꾸는 방식이다. 캠퍼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캐주얼 신발 브랜드로 안정적 입지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편한 신발'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는 과제도 안고 있었다. 파리 패션위크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자신의 독립 레이블로 먼저 캠퍼 협업을 선보이는 방식은 캠퍼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적은 테스트베드이자, 오르투뇨 입장에서는 자신의 팬덤과 캠퍼의 고객층을 자연스럽게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시즌상으로도 SS27 공개는 다음 해 상품 기획과 맞물려 있어, 이번 쇼에서 보여준 왜곡·유머의 언어가 캠퍼 정규 라인에 얼마나 옮겨갈지를 가늠하는 선행 지표로 작동한다.

다음에 볼 것

지금 이 흐름에서 지켜볼 지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번 SS27이 아브라라는 독립 레이블의 '마지막' 컬렉션으로 알려진 만큼, 오르투뇨가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완전히 접고 캠퍼 한 곳에 집중할지, 아니면 다른 형태로 유지할지가 다음 분기의 관전 포인트다. 둘째, 이번 무대에서 공개된 캠퍼와의 신발 협업이 실제로 언제, 어떤 가격대로, 어느 매장과 온라인 채널에서 판매되는지가 중요하다. 쇼에 오른 실험적 디자인과 실제 판매되는 상품 사이에는 보통 거리가 있는데, 그 거리가 얼마나 좁혀지는지가 이번 발탁의 상업적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다. 셋째, 오르투뇨가 이끄는 캠퍼·캠퍼랩의 정규 컬렉션이 언제 처음 공개되는지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 SS27은 어디까지나 아브라 명의의 쇼였고, 캠퍼 본체의 색이 입혀진 첫 컬렉션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버섯 질감, 과일 모자, 거꾸로 신는 발상 같은 지금의 실험들이 캠퍼라는 대중적 브랜드 안에서 어떻게 순화되거나 오히려 더 과감해질지에 따라, 이 영입이 캠퍼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혹은 한 시즌의 화제성에 머물지가 갈릴 것이다. 신발 업계 전반에서 비슷한 발탁이 이어질지도 함께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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